[ 공허한 십자가 ] - 히가시노 게이고

[ 공허한 십자가 ]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일본 추리 소설 하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나뿐이지 않겠지.
느닷없이 추리소설이 너무 보고 싶어 서점에 들렀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 중 가장 이끌렸던 공허한 십자가 를 구매해 왔다.

예상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책은 흡입력이 좋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금방 읽었다.
공허한 십자가의 전체 분량은 446페이지지만 읽고 나면 그렇게 분량이 길었나..? 싶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본 소설 혹은 다른 외국소설을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헷갈려서 다시 책 앞부분으로 돌아가 인물이 소개됐던 페이지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그런 경우를 방지하고자 인물 전개도를 그리는 동시에 소설을 읽었더니 훨씬 수월하게 다음장으로 넘길 수 있었다.
혹시 공허한 십자가를 읽고도 등장인물 파악이 어려웠던 분들을 위해 내가 그린 인물 전개도를 첨부한다.

공허한 십자가의 등장 인물 전개도 - S2ung

 

공허한 십자가 - 교보문고

 

"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 "

책의 전 내용을 가장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책에 나와있는 문구이면서 책을 다 읽은 후 가장 뇌리에 명확하게 박혀있는 문구이기도 하다.

사형제도에 관해 두 가지 견해를 모두 찾아볼 수 있는데 각각의 의견을 잘 뒷받침한다고 생각하는 문장을 인용하려고 한다.

🩸 사형 폐지 비판론자

유족은 단순히 복수를 하기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p.188

가령 사형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그것을 결코 유족의 승리가 아니다. p.189

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에 불과하다. p.190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p.212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 -- 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p.213

 

🔗 사형 폐지 찬성론자

사형 제도에 의구심을 품는 것은, 그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건은 전혀 별개이고 유족의 면면도 다른데 결론은 사형이라는 한 가지로 처리된다.
하지만 각각의 사건에는 각각에 맞는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192

사형을 형벌로 여기지 않고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 아무런 반성도 없이, 유족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이, 다만 사형이 집행될 날을 기다린다는 것. p.202

히루카와도 결국 진정한 의미의 반성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사형 판결은 그를 바꾸지 못했지요.
사형은 무력(無力)합니다. p.201

교도소에서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과 제 남편처럼 현실 속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면서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속죄라고 생각하세요? p.413

사형에 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책을 보고 난 후 약간 머리가 띵- 해짐을 경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완전한 사형폐지국가는 아니지만 1997년 이후로 현재까지 사형 집행이 이루지지 않았기에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된다.
이런 실질적 사형폐지 이유로 무죄추정의 원칙*, 사형 집행인의 인권과 트라우마 등이 있다.
따라서 이는 대한민국 국적의 국민이라면 사형집행을 받을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죄질이 나쁜 흉악 범죄자들이 급증함에 따라 사형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범죄자들을 수감시켜 둔다한들 피해자 가족들은 가해자가 가석방으로 출소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감에 사로 잡혀 있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은 자신들이 뼈 빠지게 벌어 낸 세금으로 범죄자들 먹여 살리고 있다는 불만을 심심치 않게 호소한다.

책의 중반을 읽어갔을 때만 해도 당연히 나 또한 사형제도 폐지를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유족의 입장으로 사건에 대입했을 때 도저히 가해자가 밥 처먹고 살아가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후반부로 달려가면서 책을 덮을때 쯤 생각이 달라졌다.
내 가족을 무참히 짓 밟은 가해자를 단순히 사형하는 것은 관대한 후처리라 볼 수도 있다는 쪽으로 말이다.
진심으로 속죄와 갱생을 원한다면 본인이 저지른 죄질에 걸맞은 어떠한 활동이나 생각을 지속하며 죄를 갚아나가는 것이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런 영화를 접한 적이 있다.
고도로 발달한 미래에서 본인은 엄청난 흉악범이지만 기억을 잃은 채 꿈속에서 몇 년을 걸쳐 본인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과정을 겪게 되지만 현실에서 1(? 확실치 않지만 아무튼 굉장히 적은 시간) 초도 안 되는 시간이며 이를 무한히 반복하는 형벌을 받는 그런 내용이었다.

문득 이 영화의 내용이 떠오르면서 만약 과학이 발달하여 이와 같은 방법을 도입한다면 사형집행자의 인권과 트라우마도 해결되며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과정이고 비윤리적인 방법도 아니다.
또한 딱 한번의 과거범죄 회상형벌(현실 1초)로 죄의 유무를 판단 할 수 있으므로 무죄추정의 원칙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아쉬운 건 당장 활용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것이지만 그나마 비슷한 방법으로 소설책의 후미야처럼 의사로서, 하나에의 남편으로서 끊임없이 속죄하며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사형에 대한 정답은 없다.
어떠한 것이 합리적인지는 개개인 판단 모두 정답이지 않을까.

무죄추정의 원칙* : 모든 피의자나 피고인은 무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원칙